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8 민주화운동/학살 (문단 편집) == 계엄군 개개인들의 책임 문제 == '''이유야 어쨌든 의무복무 중이거나 무관한 이유로 자원한 사병들/부사관들/장교들 역시 국제법인 [[제네바 조약]]을 어긴 반인륜 범죄자들이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 참작 여부가 있을 뿐이다.''' 계엄군 장병 개개인들의 책임에 대해선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범죄에 가담한 장병 개개인이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들을 폭력으로 내몬 전두환과 계엄군 상층부에게 더 큰 책임을 돌려야 하며 장병들 또한 또다른 피해자'라는 주장과, '단순히 상부의 명령이라고 하기엔 '''상부의 명령도 없었는데 계엄군 개개인들이 자발적인 의지로''' 5.18 당시 내보인 묻지마 살인, 약탈, 강간 등의 범법행위에 대해선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대립하고 있다. 전두환 같은 내란수괴부터 시작해서 당시 계엄군 중 범죄에 가담한 장병들까지 전원 사형을 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더 나아가서 가장 악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집단인 '''3공수, 7공수, 11공수를 완전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다.[* 일단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112303#0000|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제4조, 8조, 9조, 13조, 15조 등 을 적용하여 전두환을 비롯한 당시 범죄에 가담한 진압군 장병들까지 전원 사형 내지 최소 징역 7년 이상을 부과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제6조의 공소 시효 없음을 적용하면 오늘날에도 처벌은 가능할 것이다.] 또한 [[PTSD]]에 시달리는 것과 별개로 아직도 저 당시 지휘관이나 일선 장병들 중 범죄에 참여한 자들은 '''"[[딘코 사키치|더 못 죽인 게 아쉽다.]]"'''는 식의 나치군이나 일본군 전범들과 다를 바 없는 태도를 보이는 부류도 상당수 있다. 다만, 이들의 책임과는 별개로 이런 망언을 하는 태도 역시 PTSD의 한 형태라는 해석은 있다. PTSD의 증세 중 하나가 자신의 경험을 합리화, 정당화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계엄군 전원을 사형 내지는 처벌하자는 주장은 과한 감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국제 재판을 예시로 든다면 [[독일 국방군]], 나치군 [[무장친위대]], [[일본군]], [[보스니아 내전]]의 세르비아 군의 병사 개개인을 전부 전범으로 처벌한 적이 없었고, 단지 직접 범죄에 참여했고 증거가 있는 자들만 처벌했을 뿐이다. 당시 계엄군 병사들은 징병된 자들이거나 전두환의 쿠데타와 무관한 이유로 자원한 이들인데, 이들 개개인의 범죄 적극도를 따지지않고 진압군인 것 자체로 사형/처벌하자는 건 [[보스니아 내전]]에 참전한 세르비아 군에 대한 처벌에서도 존재하지 않던 방식이다. 그리고 위의 징병된 사람들이라는 의견은 틀린 게 아니다. 국군통합병원(20사단), 지해남(31사단), 광주-목포간 도로(20사단) 등[*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12․12, 5․17, 5․18사건 조사결과보고서, 2007, 8쪽.]처럼 특전사가 아닌 군인들이 민간인 살상을 벌인 사례가 있으며, 징병된 군인들이 포함됐다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 공수부대엔 부사관이 아닌 병사들도 포함이 되어있다. 당장 일병들도 여러 명이 확인된다.[*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12․12, 5․17, 5․18 사건 조사결과보고서, 2007, 85, 86, 89, 98.] 말단병사들은 부사관이 아니다. 김정한 박사의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소명출판, 2013)를 보면 당시 시위대들도 사로잡은 계엄군들을 사형한 사례가 '''전혀 없다.''' 일부 시민들이 분노해서 우발적으로 구타한 사례가 있을 뿐이지, 오히려 구타 없이 풀어준 사례들도 있을 정도다. 계엄군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징병된 병사들을 처벌하자는 건 항쟁에 참여한 시민들한테도 존재하지 않던 과격론이다. [[5.18 민주화운동]] 문서에서 '항쟁 주체의 성향과 이념' 부분에서도 김정한 박사의 책을 인용했던데, 이 책은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어보면 당시 시위대는 좌익 세력이 아니라 보수적 개념의 자유주의며, 과격주의자가 아니라고 나온다. [[김영택(1936)|김영택]] 박사의 5월 18일 광주 광주민중항쟁 그 원인과 전개 과정(역사공간, 2010)도 여러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역시 시각이 비슷하다. 반면에 단순 가담자가 아닌 적극적으로 전쟁 범죄(강간, 무차별 학살 등)를 저지른 전범들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여담으로 저지른 죄가 죄다 보니 계엄군으로 동원된 군부대들에는 (특히 5.18을 기억하는 목격자들이나 생존자들, 혹은 희생자 유족들로부터) 아직도 은근히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앞장서서 민간인들을 묻지마 학살하며 강간도 병행한 1티어급 악질 군부대,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3대 공수특전여단(제3공수특전여단, 제7공수특전여단, 제11공수특전여단)은 현재까지도 꼬리표가 따라붙고 있는 중. 11공수여단은 5.18에서 흉악한 범죄들을 일으킨 61대대, 62대대, 63대대를 아직도 '''그때 그 이름 그대로 현재까지 편제에 남겨 두고 있는 건 물론'''[* 지금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지에서 이 61대대, 62대대, 63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20~30대 남성들을 찾아볼 수 있다. 즉 이 3개 대대가 현재까지도 존속하고 있다는 얘기.] 5.18 때 사망한 11공수여단 사망자들을 '''"전사자"'''로 표기하고 있었다. 11공수여단 뿐만 아니라 7공수여단 역시 5.18 당시 7공수여단 사망자 추모비에 "80. 5. 27 광주소요진압 시 '''전사'''" 로 표기했고, 이것들보다 한술 더 떠서 3공수여단은 아예 5.18 당시 3공수여단 사망자 추모비에 '''"대침투작전간 전사"'''라고 사실을 완전히 왜곡하여 기록해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2019년 2월부터 시작된 국방부의 5.18 관련 조형물 전수조사를 통해 폭로되기까지 했다. [[https://www.news1.kr/articles/3587817|#]] 연도를 따져 보면 3공수여단, 7공수여단, 11공수여단은 거의 40년이 넘도록 5.18 때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참고로 그 국방부에서도 계엄군 사망자들의 공식 공적조서에는 전사가 아닌 '''순직'''으로 기재했다. '''1980년 6월'''부터 이미.] 이 공수여단의 전역자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특전동지회가 최영신을 비롯한 계엄군 양심고백 내부고발자들에게 테러와 위협을 가하는 만행을 벌여댄 건 물론 1989년에 5.18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KBS를 상대로 빨갱이라고 몰아 가거나 2007년에 영화 [[화려한 휴가]] 개봉 때도 망언을 하며 반성의 진의가 의심되는 짓거리를 했던 건 덤. 이러고 있으니 욕을 안 먹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며, 다르게 생각하면 군 부대의 탈을 쓴 '''범죄단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제20기계화보병사단]]은 5월 22일 화정동 국군통합병원 앞에서 [[No Russian|갑자기 주변의 민간인들에게 묻지마 총기난사를 벌이는 만행]]을 저지른 부대이고, [[상무대]]의 경우에는 그 당시에 상무대에 주둔하고 있던 전투교육사령부가 계엄군의 작전지휘를 맡은 기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끌고 가 심문이라는 미명하에 상무대 헌병이라는 작자들이 영창에서 인권 따위 진작에 말아먹은 고문까지 한 데다가 그 예하 부대인 3대 학교([[육군보병학교]], [[육군포병학교]], [[육군기계화학교|육군기갑학교]])도 계엄군의 만행에 단단히 한 몫 거들었던[* 특히 보병학교 교도대는 주남마을 학살의 원인이 되었던 11공수에 대한 오인사격을 벌인 부대이기도 한데, 우선 전술 면에서 따지자면 '''피아식별이 지극히 힘든 야간 시간대도 아닌 훤한 대낮에, 수하 절차를 통한 확인도 제대로 안하고 다짜고짜 아군을 향해 무반동포와 총알부터 날리고 본 한심함'''도 (특히 보병학교 교도대라면 훈련부대라는 특성상 육군의 FM급 모범이 되어야 할 부대임에도) 비판거리지만, '''11공수 행렬이 시민군인줄 알고 쏘았다'''는 보병학교 측의 해명은 더 더욱 큰 문제다. 바꿔 말하자면 보병학교 교도대 역시 3대 공수특전여단으로서 학살에 가담한 자들처럼 '''시민군으로 보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경고 한 번 없이, 그냥 문답무용으로 보이는 족족 모두 쏴 죽일 의도가 충만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부대들이다 보니 상무대에 근무하는 군인들도 광주에서 좋은 취급은 못 받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5.18 진압 이후 '''[[사이코패스|아주 만족스럽게 기쁜 웃음을 지은]] [[소준열]]'''이 바로 5.18 당시 전교사 사령관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dnc18T8qDE|38년 만에 공개…5.18 진압 후 웃는 계엄군 / KBS뉴스(News)]]] 이 때문에 1980년대~1990년대에 특전사/20사단/상무대 출신자들에 대한 인식이 광주에서 어땠을지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수준. 물론 이들도 '''3대 공수특전여단 이상으로 악질인 [[국군기무사령부|국군보안사령부]]'''는 이길 수가 없었다. '''보안사령부는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민주화 이후에도]], 그리고 기무사로 이름이 바뀐 이후에도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5.18 당시와 전혀 달라진 게 없이 늘 한결같았던]] 반성 없는 [[철면피]]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에 특전사(3공수여단, 7공수여단, 11공수여단)/상무대[* 제20기계화보병사단은 2019년 11월자로 해체되었다.]에 현재 복무 '''중인''' 사람이 있다고 해서 욕하지는 말자. 특히 특전사의 경우에는 애초에 40년 넘게 이름도 안 바꾸고 자기네 부대가 저지른 살인과 강간, 내란/반란 등의 범죄도 제대로 반성 안 하는 여단 수뇌부 놈들 잘못이지, 그들 입장에선 자대를 그리로 배치받았을 뿐인데 욕을 열심히 먹고 있는 것이다. 이후 1997년 대법원의 "5.18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 행위가 아니라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판결한 판례에 따라 이전에 '전사'로 등록되어 있었던 계엄군 소속 군인 22명의 분류를 '순직'으로 바꾸었다. 또한 재심사한 22명의 최초사망경위에 있었던 '폭도'라는 말도 삭제했으며, 국방부는 "5.18 계엄군 사망자가 대부분 의무복무 중이었던 하위 계급의 군인으로, 엄격한 상명하복의 상황 속에서 상부의 명령에 따라 임무 수행 중 사망했음을 인정해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하는 '순직-Ⅱ형'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국립서울현충원 역시 22명의 묘비에 쓰여진 전사 문구를 순직으로 바꾸기로 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12095053&isYeonhapFlash=Y&rc=N|#]]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